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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사 직업의 모든 것

by 공부하는 장박사 2023. 3. 27.

 

국제도선사협회 (IMPA) 홈페이지


1. 도선사(Pilot)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석에서 해양분야를 직업으로 하지 않으시는 분들이 저와 좀 친해지고 나면 꼭 물어보시는 질문들 중에 단연 관심이 많은 직업은 '도선사'였습니다. 도선사는 어떤 직업이냐?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나?, 특히 연봉은 얼마나 되나? 등등 정말 관심 있게 그리고 신기하게 생각하고 질문을 하십니다.
 
저는 도선사는 아니지만 도선사 시험출제 위원이나 도선사 면접시험 위원으로 참여한 경험, 그리고 도선사가 된 친구, 선후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그래도 직접 도선사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다른 분들보다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씀을 드리기는 하는데 도선사라는 직업에 대해 내가 아는 짧은 지식이지만 언젠가는 한번 정리해서 알려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적어 보고자 합니다.
 
제가 정리한 부분이 다소간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하시면서 참고 정도로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1 직업만족도 조사

2017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직업 만족도 조사에서 직업 만족도 1위를 기록한 직업은 '판사' 였습니다.
이 조사는 국내 621개 직업 종사자 1만 9127명을 대상으로 직업의 발전 가능성, 급여만족도, 직업 지속성, 근무조건, 사회적 평판, 수행직무 만족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조사에서 정작 1위를 기록한 판사보다 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직업은 2위를 기록한 '도선사'라는 직업이었습니다.
이 조사 결과로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생소했을 도선사라는 직업이 일약 국민적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저나 해양전문가들에게 관심 있게 도선사라는 직업에 대해 물어보게 된 것도 아마도 이 조사결과에 대한 언론보도가 큰 계기가 된 것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실제로 도선사님들을 만나보면 대부분의 도선사님들은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 성취감은 부러울 정도로 정말 남다릅니다.
그러면 이 멋진 직업, 많은 해양인의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인 도선사에 대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2 도선사의 역사적 기원

표준 국어대사전에 도선사를 검색하면 "도선법에 따라 일정한 지역에서 배들을 안전하게 수로로 인도하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Pilot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 Pilot 하면 비행기 조종사를 의미하고 이해하고 있지만 비행기라는 게 근대에 와서 개발된 것이므로 역사적으로는 선박을 조종해서 안전하게 항해를 안내하는 사람을 말했을 것입니다.
 
도선사의 역사적 고대 기록
 

포르키스 - 바다의 숨겨진 위험의 신

위험한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에서 특정한 구역을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 지금의 도선사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는데 이러한 역할을 언급하는 몇 가지 역사적 고대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정보를 충분히 가지고 거대한 선박으로 항해를 해도 여러 가지 사고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바다에서 고대의 바다는 그야말로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바다와 관련한 많은 신들과 괴물들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포르키스(Phorcys)는 바다를 다스리는 노인으로 묘사되며 '바다의 노인'으로 불리는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신입니다.
포르키스는 바다가 숨겨진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말해주는 신으로 인어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의 아들로 포르키스 자신보다는 그가 낳은 괴물 딸이 더 유명합니다. 
쳐다보기만 하면 누구든 돌로 변하게 만든다는 '메두사'가 바로 포르키스의 딸이며, 세명의 고르곤(괴물) 중 1명입니다.
특히 고르곤은 선원들을 위협하는 암초를 의인화한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타벅스의 로고와 세이렌 (Seirenes)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 프렌차이즈인 스타벅스의 로고로 알려진 '세이렌(Seirenes 혹은 Sirens)'은 아름다운 처녀의 모습을 하고 노래를 불러 자신들 곁을 지나가는 선원들의 넋을 잃게 한 다음, 자기들 쪽으로 노를 짓게 하고는 이내 바위에 부딪혀 죽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항로표지와 VTS에 대한 전문 국제기구인 국제항로표지협회(IALA)의 로고로 사용되는 인어도 세이렌입니다.
 

국제항로표지협회(IALA)의 로고와 세이렌(Seirenes)

 
이런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무사히 통과한 기록은 두번 있었다고 하는데 '오르페우스가 탄 아르고 호는 아름다운 오르페우스의 노래소리 덕분에 선원들이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는 기록과 '트로이전쟁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의 충고대로 자신과 부하들의 귀를 막고, 몸을 배에 묶어놓았기 때문에 무사히 세이렌의 섬을 통과할 수 있었다.' 는 기록이 나옵니다.
 
세이렌의 노랫소리에도 '그 지역의 위험성에 대해 잘 알고 그 위험을 극복하고 안전하게 선박을 안전하게 안내하는 것' 이것이 바로 도선의 기원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 속 도선사
 
성경의 역사적 배경은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지금의 중동지방입니다.
성경 속에서도 해상무역에 대한 내용이 정말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구약성경 에스겔서 27장 27절, 28절과 29절에는 구체적으로 세 번 연속 'Pilot'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에스겔서가 기록하고 있는 당시 배경이 B.C 6세기 경으로 추정되는데 당시에도 도선사가 해상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Ezekiel 27: 26 ~ 29>
 
The Destruction of Tyre
26 “But look! Your oarsmen
have taken you into stormy seas!
A mighty eastern gale
has wrecked you in the heart of the sea!

27 Everything is lost—
your riches and wares,
your sailors and pilots,
your ship builders, merchants, and warriors.
On the day of your ruin,
everyone on board sinks into the depths of the sea.

28 Your cities by the sea tremble
as your pilots cry out in terror.

29 All the oarsmen abandon their ships;
the sailors and pilots stand on the shore.
 

호모의 일리어드

 
호머의 일리어드 속 도선사
 
고대 그리스의 영웅 율리시즈 (Ulysses)가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귀향에 이르는 길에 겪는 10년간에 걸친 대모
혐의 이야기인 호머(Homer)의 일리어드(Iliad) -오디세이(Odyssey)에도 도선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리어드,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을 둘러싼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로 신화, 전설, 이야기의 형태로 구전되었고, 기원전 8세기경 호머는 이를 집대성하여 서사시로 만들었습니다.
일리어드는 트로이 전쟁 중에 있었던 이야기를, 오디세이는 전쟁 후에 이야기와 사건들을 다룹니다.
 
호머는 그의 책 일리어드에서 'Thestor'라는 안내자에 대해 'Achaens에서 Llion으로 배를 인도 한 사람'
'the person who guided the ships from Achaens to Llion'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에리트리아 해의 페리플러스

에리트리아 해의 페리플러스 (Periplus of Erythrean sea)와 도선사
 
페리플러스(Periplus)는 항해 일정과 방문한 항구에 대한 상업적, 정치적, 민족학적 세부 사항을 기록한 일지로 지도가 보편화되기 이전에는 지도책과 여행자수첩의 기능을 겸비했다고 합니다 (sailing-around). 

에리트리아 해(Erythrean sea)는 홍해 해안을 따라 로마, 이집트, 아프리카의 뿔*과 파키스탄 신드 지역과 인도 남서부 지역을 포함한 아라비아해 및 인도양이 있는 지역의 바다를 말합니다.

이 지역의 항구에서 항해 및 무역 기회를 설명하는 글을 남겼는데 그 문서가 바로 '에리트리아 해의 페리플러스 (Periplus of Erythrean sea)'입니다.
 
*  ‘아프리카의 뿔(The Horn of Africa)’은 지도상의 모양 때문에 불리는 나라들로 아프리카 북동부 10개국을 말합니다.
 -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지부티, 수단, 부룬디, 케냐, 르완다, 탄자니아, 우간다
 
A.D 1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저자를 알 수 없는 이 문서에는 분명히 그 지역에 익숙한 누군가가 직접 설명한 것이며 놀랍게도 고대 그리스 세계가 인도양 주변 지리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합니다.
 
이 정도의 해양과 항만에 대한 전문성과 이해를 바탕으로 자세히 기록했던 분을 바로 '도선사의 조상'이라 불러야 하겠습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속 도선사
 
동방견문록 (Livres des merveilles du monde)은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 여행을 다닌 이야기를 기술한 책입니다.
일본에서 번역해서 동방견문록이고 원 제목은 '세계의 서술'이라고 합니다.
또한 실제로 동방견문록을 집필한 사람은 마르코 폴로 본인이 아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르코 폴로가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해전에서 제노바의 포로가 되어 감옥에 있었을 때 같이 감옥에 있던 동료 죄수인 루스티켈로 다 피사(Rustichello da Pisa)라는 소설가가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를 글로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대한 기록의 정확성에 의구심을 가지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만 일종의 여행담으로써 유럽인들에게 아시아에 대한 정보를 소개해 대항해시대를 열게 된 원인 중의 하나로 꼽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 속에는 우리나라 동해를 '동쪽바다'라고 적은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은 일본과의 동해 명칭에 대해 우리나라가 유리한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되는 책이어서 또 다른  면에서 관심을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동방견문록에는 도선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르코 폴로의 첫 번째 항해에서 아랍인 도선사의 도움으로 인도양을 건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마르코 폴로는 1271년에 처음으로 동양으로 항해를 떠났고 그곳에서 아버지, 삼촌과 함께 무역 사절단을 따라 원나라 쿠빌라이 칸의 궁정에 갔다고 합니다.

도중에 그들은 Muhammad al-Idrisi라는 아랍 도선사를 고용하여 인도양의 낯선 바다를 통과했습니다.
거친 바다와 위험한 날씨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도선사의 도움으로 그들은 성공적으로 바다를 항해하여 원나라에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는 중세 시대 동양 세계의 문화, 관습, 사회에 대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으로 볼 수도 있고, 특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페르디난드 마젤란을 포함한 후대의 유럽 탐험가와 모험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데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도선사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지안 데 라 코사(Gian de la Cosa)라는 이름의 도선사가 산타 마리아호에 승선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Cosa의 전문 지식은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 탐험과 신대륙 탐험을 안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스페인 무적함대(Spanish Armada)의 패전과 도선사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던 스페인 무적함대(Spanish Armada)의 몰락에는 도선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스페인 함대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함대로 여겨졌으나 영국 함대에 패배하면서 이후로 스페인은 해양경쟁의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는데 스페인 패배에 대한 한 가지 이론은 영국 주변 해역을 항해하는 능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을 도선사가 승선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폐위시키기 위해 영국을 침공하였습니다.
무적함대는 130척 이상의 배와 30,000명의 병력을 보유한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함대였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함대는 영국 해군의 손에 압도적인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스페인 함대의 패배에 기여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선박에 승선한 숙련된 도선사의 부족이었습니다.
도선사는 강한 조류와 예측할 수 없는 바람으로 유명한 영국 주변의 위험한 바다를 항해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숙련된 도선사가 없었기 때문에 스페인 함대는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대조적으로 영국 해군은 항해술과 항법에 대한 전통적 강점을 가지고 있었고 배에는 경험 많은 숙련된 도선사가 승선해 있었습니다.
영국 도선사들은 바다에 대한 지식을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고 스페인 함대와 효과적으로 교전할 수 있도록 함선을 배치했습니다.

스페인 무적함대와 영국 해군 간의 전투는 해양 경쟁의 역사에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스페인의 패배는 해군력의 쇠퇴를 의미했으며 다른 유럽 강대국이 지배적인 해군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되었습니다.
이 해전은 도선의 중요성과 숙련된 도선사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보여줍니다.
 
 
바스쿠 다 가마의 항해와 도선사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 1460~1524)는 유럽에서 인도까지의 첫 항해로 유명한 포르투갈 항해자로, 희망봉을 통해 유럽에서 인도까지의 항로를 열었습니다.
포르투갈 출신 탐험가인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1488년 희망봉을 발견한 이후 포르투갈의 숙원이던 인도 항로를 개척하였는데  바스쿠 다 가마는 1497년 7월에 리스본을 출발하여 총 2년간 약 42,000km를 항해하였습니다.
 
출발 시 함선 4척을 이끌고 갔지만 2척만이 돌아왔으며, 170명 중 55명만이 생존하여 귀환하였다고 합니다.
이 새로운 항로의 개척으로 포르투갈은 동방무역의 길이 열렸으며 유럽과 인도 간 해상을 통한 직접 교역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포르투갈이 새로운 유럽의 강자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 항해를 성공시킨 중요한 역할에는 아랍 고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스쿠 다 가마가 고용한 가장 중요한 아랍 고문 중 한 명은 항해 전문가이자 인도양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가진 이븐 마지드(Ibn Majid)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드는 위험한 해류를 항해하고 길을 따라 안전한 항구를 식별하는 것을 포함하여 인도양의 위험한 바다를 통해 바스쿠 다 가마의 함대를 안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또한 포르투갈 함대가 현지 상인과 협상하고 인도 왕국과 무역 관계를 수립하는 일도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마지드와 같은 숙련된 도선사의 고용은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해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해양 탐험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근대 도선 제도의 시작, 영국
 
현재와 같은 도선제도의 모습은 15세기 영국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해상 무역이 점점 더 중요해졌고 숙련된 선장과 도선사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습니다.
도선사는 해류, 조류 및 안전한 항로를 포함하여 지역 해역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 특히 일반적인 선장이나 항해사가 익숙하지 않거나 위험한 바다에서 선박의 안전하고 성공적인 운항에 매우 중요했습니다.

영국에서는 해상 교통량이 많은 런던, 헐, 뉴캐슬과 같은 해안 지역에서 부터 도선 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도선사는 종종 길드나 협회로 조직되어 그들의 활동을 규제하고 전문성을 인정받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도선사의 역할은 국가의 면허 및 규제 도입과 함께 더욱 공식화되었습니다.
도선사는 해운회사로 부터 요구가 많았고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입증하기 위해 엄격한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영국의 도선사는 안전한 항해에 필요한 전문 지식을 제공했기 때문에 해상 무역 및 탐험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후 수세기 동안 영국을 주요 해양 강국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영국 트리니티 하우스 홈페이지

 
런던 템즈강 도선
 
트리니티 하우스는 템스 강과 영국의 다른 수로에 대한 도선을 규제하기 위해 1514년에 설립된 조직입니다.
원래 Deptford 지역에서 Guild of Holy Trinity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Trinity House는 1514년 Henry 8세로부터 '왕실 헌장(Royal Charter)'을 받아 항해에 대한 안전 기준을 설정하고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오늘날 트리니티 하우스는 잉글랜드, 웨일스, 채널 제도 및 지브롤터의 공식적인 항로표지 업무를 수행하는데 이 지역의 해안과 수로에 있는 등대, 부표 및 기타 항해 보조 시설을 유지 관리할 책임을 가집니다.
또한 트리니티 하우스는 도선을 규제하고 도선사 및 기타 해양 전문가를 위한 교육 및 인증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1514년 이전에는 템스 강에서의 모든 도선이 완전히 규제되었던 것은 아닌데, 같은 해에 헨리 8세는 트리니티 하우스(Trinity House)에게 템스 강에서의 도선을 규제하는 왕실 헌장을 수여했습니다.

도선에 대한 트리니티 하우스의 책임은 그때부터 커져서 1986년까지 런던뿐만 아니라 40개 이상의 다른 지역에 대한 도선 권한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1987년 도선법에 따라 템즈 강 하구의 도선에 대한 책임은 런던 항만청(LPA)으로 이전되었고 1988년 10월 1일부터 도선사는 런던 항만청에 직접 고용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도선에 대한 역사적 사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오랫동안 도선이 해상 무역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또한 도선사가 역사를 통틀어 다양한 문화에서 중요하게 인식되고 존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도선의 역사

우리나라의 경우 도선이 이루어졌다는 최초의 기록은 9세기 일본인 승려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남아있습니다.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자각대사 엔닌(円仁, 794년 ~ 864년)은 일본의 교토시 인근 엔랴쿠지의 승려로 그의 일기인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를 통해 9세기 당나라와 당나라의 신라인의 생활을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838년 일본 규슈(九州) 하카타를 출발하여 9년간(838~847) 당나라에 머물면서 그동안의 행적을 일기로 썼는데 일기는 총 4권으로 당시의 당나라의 풍습과 관습, 문화 등 많은 사실적인 기록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책에서 “신라인 해상왕 장보고의 통치 아래 있던 중국 내 신라방이 자신에게 베풀어진 배려가 아니었으면, 돌아가기 힘들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어서 당시 장보고 장군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전 대학총장이자 농림부 장관을 역임하셨던 김성훈 장보고 글로벌재단 이사장은 그의 글 '장보고는 우리에게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엔닌은 장보고 대사에 올리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이 엔닌은 대사의 인덕을 입었기에 삼가 우러러 뵙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언제 뵈올지 기약할 수 없으나 다만 대사에 대한 생각만이 날로 깊어집니다. "

 
엔닌이 소속했던 엔랴쿠지에는 현재 장보고 기념비를 비롯해 당시의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작고하신 고 이준수 한국해양대 전 학장님께서도 생전에 장보고 대사와 일본승려 엔닌의 이야기를 곧잘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그때는 어려서 학장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는지 잘 알지 못했었는데 이제 저도 나이가 들어가는가 봅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 엔닌의 기록을 따라 장보고 대사와 해양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의 역사적인 연구와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이 일기가 더욱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기록에는 '일본사람이 우리나라 남해안을 거쳐 북안 항로를 향도할 자들을 배에 태웠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향도인이 바로 오늘의 도선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당연히 그 향도인 들은 신라인이 대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신라가 뛰어난 항해술을 바탕으로 한국-중국-일본을 연결하는 삼국무역의 시대를 열어 지금의 우리나라 산업을 이끄는 세계적인 한국 해운의 효시이자 모델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도선사의 역사적 기록

 
유항렬 도선사
우리나라는 1937년 일제 강점기에 인천항 (故) 유항렬 도선사가 처음으로 정식 개업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故) 유항렬 도선사 (1900~1971)
(故) 유항렬 도선사는 충남 공주 출신으로 1925년에 도쿄상선학교(東京商船學校)를 졸업하고 선장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일본인 도선사밖에 없던 국내에서 최초로 인천항 도선사로 개업했으며, 해방 후 구호물자를 실은 배를 인천항에 입항하도록 하고 한국전쟁 1.4 후퇴 때 모든 배를 출항하도록 하는 등 은퇴하는 1970년까지 도선사로 활약했습니다.

인천광역시는 도선사로 활동 당시 고인이 살았던 중구 내동의 유항렬 저택을 문화재로 지정해 소개하고 있으며, 인천항 갑문 한편에는 우리 협회가 이를 기념하고자 1984년에 세운 도선사 기념비(導船士 記念碑)가 있습니다.

<발췌: 한국도선사 협회 자료실>

 
유항렬 도선사님은 당시 조선 총독부 해사과를 끈질기게 찾아가서 설득하고 해사과장을 만나 담판을 짓고 시험에 응시해서 합격하고 도선사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차별과 박해가 엄중했을 일제 강점기에 도선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도전하고 꿈을 이루었던 유항렬 도선사님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배순태 도선사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도선사는 도선의 신이라 불렸던 배순태 도선사입니다.
 

해옹 고 배순태 도선사(1925~2017)
도선의 신이라 불렸던 배순태 도선사님은 지금의 한국해양대학교의 전신인 진해고등해원양성소 출신으로 태극기를 게양하고 태평양을 횡단한 우리나라 첫 번째 상선인 고려호의 3 항사로 활동했습니다.

1953년 해운공사 동해호의 선장으로 국내 최초로 대권항법으로 태평양을 횡단했으며 한국인 최초 세계일주 선장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1958년에는 정부가 공식 주최한 도선사시험의 첫 번째 합격자로 면허를 획득하고 1993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인천항 도선사로 활약했습니다.

특히 1974년 당시 동양 최대 크기였던 인천항 독의 개통 도선에 성공했는데, 당시 안전문제를 우려해 해외의 우수한 도선사를 취역시켜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맞서 직접 도선에 성공해 한국 도선사의 우수성을 알렸습니다. 

한국도선사협회의 공식창립 전 초대 협회장으로 활약했습니다.

1986년 평택 LNG터미널의 10만 톤 급 초대형선(골라 스피릿트)의 첫 도선, 1987년 대형 자동차전용선(노삭타이샷) 도선을 성공시켰습니다.
1988년에는 84년 만에 한국에 입항한 소련 선박(미하일 소로호프호) 도선했는데, 소련 측 사정으로 예인선 지원 없이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도선을 성공하고 다수의 명장면을 연출해 '도선의 신'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1996년 5월 31일 열린 제1회 바다의 날 기념식에서 당시 최장수 인천항 도선사로 활약한 공적으로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후학 양성을 위해 70억 원 상당의 재산을 한국해양대학교에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발췌: 한국도선사 협회 자료실>

 
기록을 다시 봐도 배순태 도선사님은 정말 도선의 신이 맞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잠시도 쉬지 않고 정말 많은 일을 부단하게 해 오신 열정적인 분이셨습니다.
저희 후배들도 선배님들의 길을 따라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배순태 도선사님의 자서전 중에는 학창 시절에 당한 혹독한 체벌로 한쪽 귀가 잘 안 들렸다고 하는 기록도 나오는데 역시나 '학폭'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한국도선사 협회

한국도선사협회는 1977년 9월 1일 창립하여 올해가 창립 46주년이 됩니다.
현재 회장님은 제19대 조용화 회장님으로 인천항 도선사이십니다.
전국 12개 지회에 250명의 도선사가 활동하고 있고 지금까지 퇴직한 도선사님은 560명 정도라고 합니다.
 
 

2. 도선제도

도선은 도선하는 구역에 따라 크게 다음의 4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 Harbour Pilotage
  • River Pilotage
  • Sea Pilotage
  • Strait Pilotage

 
Harbour Pilotage
대부분 도선은 항만에서 선박 입출항을 조선하는 도선인 Harbour Pilotage를 의미합니다.
 
River Pilotage
미국의 미시시피강과 같은 거대한 강을 따라 대형선박이 항해하는 경우 도선사가 승선하여 선박을 도선하는데 보통 20시간 이상 항해를 합니다. 
 
Sea Pilotage
영국의 도버해협과 같이 선박 통항량이 많고 복잡한 해역에서는 이 지역을 전문적으로 항해하는 도선사가 승선해서 도선을 하는데 이를 Sea Pilotage라고 하고 이런 도선사들을 'Deep Sea Pilot'이라고 많이 부릅니다.
 
Strait Pilotage
호주와 파푸아뉴기니 사이의 토레스 해협(Torres strait) 같이 좁은 해협에서 도선사가 승선해서 해협만 전문적으로 통과시키는 도선을 말합니다.
 


2.1 도선제도의 목적 및 정의

도선제도는 도선법에 의해 시행되는 제도이므로 도선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도선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도선”이란 도선구에서 도선사가 선박에 승선하여 그 선박을 안전한 수로로 안내하는 것을 말한다.

2. “도선사”일정한 도선구에서 도선업무를 할 수 있는 도선사면허를 받은 사람을 말한다.

3. “도선수습생”이란 제15조에 따른 도선수습생 전형시험에 합격한 후 일정한 도선구에 배치되어 도선에 관한 실무수습을 받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도선법에는 도선은 도선구에서 도선사가 선박에 승선하여 수로로 안내하는 것이라 정의했습니다.
또한 도선사는 '일정한 도선구'에서 '도선사 면허'를 받은 사람이라 정의했습니다.
 
즉 도선사는 해당 도선구에서 면허에 해당하는 사항(선박의 크기 등)에 대해 도선업무를 할 수 있습니다.
 
 

2.2 도선면허의 종류

도선사 면허는 도선법 제4조에 따라 4등급으로 구분됩니다.
이전에는 2급으로 구분하였으나 2017년 법 개정으로 지금의 4등급으로 구분되었습니다.

제4조(도선사면허) ① 도선사가 되려는 사람은 해양수산부장관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 <개정 2013. 3. 23.>
② 해양수산부장관은 제1항에 따른 도선사면허를 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등급으로 구분하여 제17조에 따른 도선구별로 한다. <개정 2017. 3. 21.>

1. 1급 도선사
2. 2급 도선사
3. 3급 도선사
4. 4급 도선사

③ 도선사면허의 등급에 따라 도선할 수 있는 선박의 종류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개정 2017. 3. 21.>
<이하 생략>

 
도선법 시행령 제1조의 2 (도선 대상 선박)에는 도선사 면허의 급수와 도선경력에 따라 도선할 수 있는 선박의 크기를 정하고 있습니다.
 

  • 1급 도선사 경력 1년 이상: 모든 선박
  • 1급 도선사 경력 1년 미만: 총톤수 12만 톤 이하 선박.  위험화물운반선은 총톤수 10만 톤 이하 선박
  • 2급 도선사: 총톤수 7만 톤 이하 선박, 위험화물운반선은 총톤수 6만 톤 이하인 선박
  • 3급 도선사: 총톤수 5만 톤 이하인 선박, 위험화물운반선은 총톤수 4만 톤 이하인 선박
  • 4급 도선사: 총톤수 3만 톤 이하인 선박(여객선은 제외), 위험화물운반선은 총톤수 2만 톤 이하인 선박

 

2.3 도선사 면허요건

도선사면허의 요건
도선법 제5조(도선사면허의 요건 등)에는 다음의 요건을 모두 갖춘 사람에게 도선사 면허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1. 총톤수 6천 톤 이상인 선박의 선장으로 3년 이상 승무한 경력(도선수습생 전형시험일 전 5년 이내에 1년 이상 승무한 경력을 포함하여야 한다)이 있을 것

2. 도선수습생 전형시험에 합격하고 해양수산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도선업무를 하려는 도선구에서 도선수습생으로서 실무수습을 하였을 것

3. 도선사 시험에 합격하였을 것

4. 신체검사에 합격하였을 것

 
정리하면, 도선사가 되기 위해서는
① 6천톤 이상의 선박에서 3년 이상의 선장 경력을 갖추고,
② 도선수습생 시험(필기+면접)에 합격하고 도선 실무수습을 마친 이후,
③ 도선사 시험과 신체검사를 합격하면 도선사 면허가 발급됩니다.
 
도선사가 되고 나서도 상위 급수의 도선사가 되기 위해서는 1년 이상, 200회 이상의 도선 경력을 가져야 합니다.

  • 1급 도선사: 2급 도선사로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200회 이상 도선업무에 종사한 사람
  •  2급 도선사: 3급 도선사로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200회 이상 도선업무에 종사한 사람
  •  3급 도선사: 4급 도선사로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200회 이상 도선업무에 종사한 사람

 
도선수습생 시험
 
가장 중요하고 힘든 관문인 도선수습생 필기시험은 시행령 제7조에 나와있고 시험과목은 [별표 1]에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도선사 시험은 바로 이 도선수습생 필기시험을 말합니다.

필기시험은 대부분 논문형인 주관식 문제가 출제됩니다.
보통은 과목마다 4문제가 출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법규 35
  • 운용 35
  • 영어 30
제7조(도선수습생 전형시험) ① 법 제15조에 따른 도선수습생 전형시험은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으로 구분하여 실시하되, 면접시험은 필기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② 필기시험은 논문형으로 실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단답형을 포함할 수 있다.
③ 도선수습생 전형시험의 과목 및 배점비율은 별표 1과 같다.
④ 해양수산부장관은 각 과목 만점의 40퍼센트 이상 및 전 과목 총점의 60퍼센트 이상을 받은 사람의 점수에 별표 2에 따른 해당 응시자의 승무경력 가산점을 합산하여 총득점이 높은 순서대로 제5조 제2항에 따라 공고한 선발예정인원의 110퍼센트의 범위에 드는 사람을 필기시험합격자로 결정한다. <개정 2013. 3. 23., 2022. 7. 4.>

이하 생략

 
도선사 실무수습 기간과 수습 횟수
 
실무수습에 대해서는 동법 시행규칙 제7조(실무수습)에서 정하고 있습니다.
 
실무수습기간은 6개월이며, 원칙적으로 도선구간별로 4회 이상을 포함하여 200회 이상 승선하여 실무수습을 받아야 하며, 실무수습이 마치면 실무수습완료증명서가 발급됩니다.
 
도선사가 되는 길은 정말 길고도 어려운 길이 맞습니다.
 
선장이 되기도 어렵고 선장이 되어서 도선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보통 작심하고 노력해야 되는 일이 아닙니다.
시험일자에 맞춰서 미리 하선하고 응시하는 일도 선장님들에겐 힘든 일이고 대단히 신경 쓰이는 일입니다.
시험도 온통 주관식 답안지를 짧은 시간 동안 손이 아프도록 빨리 작성해야 하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적다 보니 다시 한번 도선사님들이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2.4 도선사 정년


도선사의 정년

도선사의 정년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도선사의 정년은 법 제7조(도선사의 정년)에 65세로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국가필수도선사로 지정된 도선사는 3년의 정년이 연장되어 68세까지 도선업무를 할 수 있습니다.
 
국가필수 도선사 제도
국가필수 도선사 제도는 도선법 제6조의 3 (국가필수도선사의 지정 등)에서 비상사태(전시ㆍ사변 등으로 해운 및 항만 기능에 중대한 장애가 발생하였거나 이에 준하는 상황)에 대비하여 항만기능 유지를 위하여 도선구별로 국가필수 도선사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동법 시행규칙 제9조의 2(국가필수도선사의 자격기준)에는 국가필수 도선사의 자격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습니다.

  • 해당 도선구의 1급 도선사일 것
  • 최근 3년간 법 제9조 제1항에 따른 면허취소처분 또는 업무정지처분을 받은 사실이 없을 것

즉, 국가적 비상사태 시 항만의 기능유지를 맡는 도선사를 국가필수 도선사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필수 도선사는 당연히 1급 도선사이고 베테랑 도선사님들입니다.
 

2.5 강제도선


도선법 제20조(강제 도선)에서 다음에 해당하는 선박에 대해 강제도선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선박이 아닌 선박으로서 총톤수 500톤 이상인 선박
  • 국제항해에 취항하는 대한민국 선박으로서 총톤수 500톤 이상인 선박
  • 국제항해에 취항하지 아니하는 대한민국 선박으로서 총톤수 2천 톤 이상인 선박

정리하면 강제도선에 대한 예외적 면제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국제항해에 취항하는 총톤수 500톤 이상의 선박과 국제항해에 취항하지 않는 2천 톤 이상 선박은 원칙적으로 강제도선 대상 선박입니다.
 
 

2.6 도선사의 지위 및 책임


도선법 제18조(도선)에서 도선사의 지위와 책임에 대해 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③~⑤호에 도선사의 지위와 책임에 대해 선장은 정해진 승하선 도선구역에서 도선사를 승하선 시켜야 하며, 선장은 도선사가 승선하면 도선사가 도선을 하게 해야 합니다.
또한 도선사가 선박을 도선하고 있을 때에도 선장은 그 선박의 안전운항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지 아니하고 선장의 권한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도선사는 정해진 도선구역에서 승선해서 도선을 하지만 그 선박의 안전운항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선장에게 있습니다. 
 

도선법

제18조(도선)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선장은 해당 도선구에 입항ㆍ출항하기 전에 미리 가능한 통신수단 등으로 도선사에게 도선을 요청하여야 한다. (이하 생략)

③ 제1항에 따라 도선 요청을 한 선박의 선장은 해양수산부령으로 정하는 승선ㆍ하선 구역에서 도선사를 승선ㆍ하선시켜야 하며, 도선사는 이에 따라야 한다.
④ 선장은 도선사가 선박에 승선한 경우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그에게 도선을 하게 하여야 한다.
⑤ 도선사가 선박을 도선하고 있는 경우에도 선장은 그 선박의 안전 운항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지 아니하고 그 권한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3. 도선사 직업의 장점과 단점


도선사 직업의 장점


'대부분의 선장님에게 도선사는 꿈이자 워너비'

이 직업의 장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높은 연봉
누가 뭐래도 해운업계에서 평균적으로 가장 높은 연봉을 가진 직업은 바로 도선사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족과 떨어져서 선장으로 오랜 시간 근무해야 도선사가 될 수 있고 일의 위험성과 중요성, 고도의 숙련도 등을 고려한다면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2) 근무형태
도선 지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일 근무, 10일 휴가의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일을 할 때는 고되지만 휴가기간에는 자기가 평소 하고 싶었던 여가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항해사로 선장으로 오랜 시간 가족들과 떨어져서 지내셨을 선장님들이 느낄 매력은 육상에서 생활하는 분들이 느끼는 매력보다 훨씬 더 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3) 높은 자부심과 긍지
해병대에서 쓰는 구호 중에 '누구나 될 수 있다면 나는 해병이 되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이 말은 정말 도선사님들한테 딱 맞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선사가 되기도 어렵지만 중요한 일, 어려운 일을 해내고 그에 상응하는 높은 수임을 하는 것에 대한 직업적 만족과 자부심, 긍지가 해양의 어떤 직업보다 높습니다.
그래서인지 도선사 협회 차원에서나 도선사님 개인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장학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선사 직업의 단점

모든 직업에 장점이 있으면 반드시 단점도 있습니다.
도선사, 선망하는 직업이지만 단점도 많습니다.
 
1) 위험하다.
최근 몇 년 전 까지도 도선사는 높은 연봉에도 보험가입도 안될 정도로 위험한 직업으로 분류되어 왔습니다.
최근에야 모 보험회사에서 생명보험과 상해보험 가입이 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흔들리는 배에 거대한 선박을 줄사다리 하나에 기대어 건현을 올라가는 일은 웬만한 특공대에게도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도선사님들은 평소에 근력운동이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불법적으로 설치되거나 정비가 제대로 안된 낡은 줄사다리를 통해 승하선 하면서 추락하는 경우, 노후화되거나 고장이 있는 선박에서 선박을 조종하는 일, 언어소통이 잘 안 되는 선장 선원과 어렵게 의사소통을 하면서 선박을 접이안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2) 되기가 힘들다.
도선사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되기도 어렵습니다.
도선사가 되기 어렵다는 것은 일단 도선사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이 어렵습니다.
도선사가 되기 전까지 6천 톤 이상 선박에서 선장으로 휴가기간을 제외한 순수한 승선 기간 3년 이상을 채워야만 응시자격이 생기기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져서 최소 15~ 20년간의 승선을 해야 합니다.
시험자격이 채워져도 시험도 쉽지 않아 낙방해서 몇 수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상으로 도선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한 번은 적어보고 싶었는데 저도 어쨌든 숙제를 한 느낌입니다.

부족하지만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도선사라는 직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면서 혹시 궁금하신 점이나 수정사항이 있으면 댓글에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공부하는 장박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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